생각하며 살아가며

작성자 이요나(admin) 시간 2022-07-09 14:58:31 조회수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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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움이 없는 일군

 

(딤후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라"


바울은 서두에서 사역자가 지켜야 할 믿음의 규범들을 말하며, 먼저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강하라명하였다. 여기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라 말한 것은 기름부음을 받으신 예수를 상기시킨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복음 사역자는 기름 부으심의 능력 안에서 강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아들이라 한 것은 아들은 아비의 선한 영적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바울은 옥에 갇힌 상황에서 복음의 후계자를 세워야만 했다. 그러나 혼혈아인 디모데는 외모를 중히 여기는 유대주의자들에게 탐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바울은 디모데를 영입할 때 유대인들 앞에서 침례를 베풀었다.


2절에서 바울은 "또 네가 많은 증인들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하였다. 이것은 복음의 영적승법의 원리를 말한 것으로 복음사역의 첫째는 제자사역이요, 또한 무엇을 가르치느냐를 명시한 것이다.

또한 여기서 충성된 사람이란 복음에 사명을 가진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뜻한다. 또한 바울은 복음의 제자들이 누구의 가르침을 받을 것인가를 역설하였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위임받은 복음을 사도들에게 주셨고 또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이제 바울은 복음 사역자들의 삶의 자세를 말하여 먼저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3) 하였다. 바울은 지금 복음사역은 영적전쟁이기 때문에 복음 사역자는 개인생활을 포기해야할 것을 말한 것이다.


두번째로 바울은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라”(5)하였다. 이것은 복음사역에 원칙을 말한 것이다. 많은 목사들이 교회성장을 목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역의 원칙을 벗어났다면 그가 쌓은 것은 모래성이 되고 말 것이다.

세번째로 바울은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6) 하였다. 곡식을 얻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는 농부의 열정과 부지런함의 댓가는 먼저 농부에게 돌아가는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오직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당부하셨고, 바울은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4) 증거하였다.


네번째로 바울은 "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8) 하였다. 바울은 여기서 십자가의 고난과 함께 성취하신 부활의 신앙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하였다.

 

다섯째로 바울은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15) 명하였다. 아무리 제자가 군사 같고 농부 같더라도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명하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부르신 자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끝으로 바울은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22) 하였다. 여기서 청년의 정욕이란 육체적인 욕정과 헛된 욕망을 뜻한다. 또한 여기서 '피하라'는 말은 요셉이 보디발의 처에게 유혹받을 때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한 말과 같은 단어이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특별히 정욕에 대한 당부를 한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복음 사역자가 정욕에 이끌리면 모두가 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역자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쫓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이요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