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오늘 우리는 갈보리채플 한국 사역, 네 번째 도전의 첫발을 놓았습니다. 43년의 천신만고 겪고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 사람을 입어 1993년 12월 7일 이태원에 서울 갈보리채플을 개척하였습니다. 가장 작고 작은 서울교회를 위하여 갈보리채플 개척자이신 척 스미스 목사님을 비롯하여 리키 라이언 목사, 히라노 코오이치 목사가 기도하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3년 후 우리는 한남동으로 이전하여 17년의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IMF로 경제가 파탄이 났고 나의 과거 생활이 추적된 이후 갈보리채플은 좋지 않은 소문 속에서 숨을 쉬며 생존해 왔습니다.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내가 의지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부르심의 은혜였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발해지면서 크리스천 웨딩교실, 자기대면 상담실도 개설하며 출판도 하고 교도소 사역도 하며 중국 선교에도 열정을 가졌지만 길을 열리지 않고 갈수록 한산 심령이 되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나를 따르는 몇 명의 청년을 지키며 하루하루 오직 신구약 성경 공부로 숨 쉬었습니다.
그때 주께서 나를 돌아보게 하신 것이 나의 과거였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를 논현동으로 인도하셔서 그곳에서 10년 동안 작지만 정말 신나는 목회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 갈보리채플 성경대학 분교로 등록되었고 12명의 1기생을 졸업시키고 지금은 2기생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주님은 나의 부족함을 위로로 채우셨고 때마다 필요한 지혜로 산과 강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제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75세의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폐암 말기라는 진단 속에서도 주님은 나를 5년간 지키셨고 아직 주님의 강단을 지키게 했습니다. 올해로 요한계시록 강해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8번째의 성경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겨우 여덟 번이지만 30년이 되었습니다.
본문 고린도후서 2장 서두에서 바울은 “내가 다시 근심으로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다” 고백하며,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를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반문하였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나는 혼자이면서 혼자라는 생각이 없이 살아왔습니다. 주께서 항상 옆에 계셨고 옆에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어린 양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맛있는 꼴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보람되고 행복했습니다. 내 안에는 항상 그리스도의 평안과 기쁨이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사실 4번째 삼성동 성전을 준비하면서 너무 외로웠습니다. 어느 날부터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나 혼자 교회 일들을 감당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생겼습니다. 어쩌면 오비이락처럼 지병의 징후가 마음은 조급하게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언제일지 모르는 예측 가능한 시간들을 준비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나이가 들면 오만가지가 다 섭섭하고 서글프다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이것이 부모 된 자의 숙명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살아 있을 때 따뜻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을 말하고 싶습니다. 네 번째 도전을 떠나는 우리 갈보리채플 삼성동 성전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안식입니다. 나와 함께 한 자, 곧 주께서 내게 이끌어 온 자들이 함께 나눌 것입니다. 아멘! (이요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