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살아가며

작성자 이요나(admin) 시간 2020-05-03 09:46:47 조회수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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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역전인생

 

(9:15) “주깨서 가라사대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

 

오늘 우리는 아나니아의 안수로 성령세례와 함께 침례를 받은 변화된 사울의 인생역전을 보게 된다. 이것은 주를 만나 변화된 모든 사람들의 증거이기도 하다. 사울이 금식을 풀고 음식을 먹어 강건해지자 그는 즉시로 회당에 나아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다.

 

사울의 증거를 듣던 유대인들은 급변한 사울의 태도에 놀라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던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고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며 기이해 하였다. 이 일로 다메섹 일대의 유대인들 사이에 큰 혼란이 일어나자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하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키고 있었다. 결국 사울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광주리를 타고 사마리아 성을 탈출하였다.

 

26절에는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 하더니라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25절과 26절 사이에는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제자들에 의해 다메섹을 탈출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시나이 호렙산의 지역의 아라비아로 내려가 성경을 통하여 3년간의 그리스도와의 독대는 은혜 가운데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계시를 발견하는 인생역전을 일으킨 의식혁명의 시간이기도 했다.

 

후일 바울 사도는 자신의 지식이 다른 사도들을 통해서 터득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라 증거하였다(1:12). 그후 사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자들과 교제를 청하였으나 제자들은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 됨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자 유대인들이 일어나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이에 사울은 그곳에 더 머물 수 없게 되어 가이사랴를 통하여 옛 고향인 다소로 내려가 7년 동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을 썼다. 결국 사울은 사도 바울로 사역하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을 고독한 투쟁을 했어야 했다. 그 당시 바울을 이방교회에 이끌어낸 사람이 바로 초대교회에서 존경받던 바나바였다.

 

나는 일본에서 갈보리채플 목사로 안수를 받고 곧 서울로 돌아와 서울 갈보리채플을 개척하였다. 내가 갈보리채플의 목사가 된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며 신학을 하였다. 그당시 나는 오직 순복음의 오중복음은 최상의 길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12년의 믿음생활 속에서도 의인의 도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오랜세월 동안 육체의 속성을 벗지 못하는 애통함으로 신음하던 199174일 히라노 코오이치 목사님 강의 시간에 환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나는 순복음을 떠나 동경 호라이즌채플로 갔고 나는 그곳에서 주의 계시를 따라 갈보리채플 목사로 안수를 받고 서울로 돌아 온 것이다. 그후 나는 3년 동안 이태원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으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다.

 

갈보리채플의 부르심에 의한 사역의 비전을 갖고 있었으나 그를 실현하기 위한 복음의 온전한 지식을 갖지 못하였다. 무언가 체워야 할 빈 깡통과 같았다. 또한 갈보리채플 형제들 속에서 함께 복음의 은혜를 나누고자 했지만 그들은 나를 경계하였다. 결국 나는 한남동으로 내려와 12년간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와 독대하며 성령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의 평안의 고독함 속에서 성경의 말씀은 내 속에서 살아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논현동에서 7년을 맞는 73살의 노인이 되었다. 이제 바라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평안이다. (이요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