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살아가며

작성자 이요나(admin) 시간 2020-06-13 17:08:09 조회수 167
첨부파일 :

 

진리의 충돌과 복음의 승리

 

(17: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라

 

교회성장을 꿈꾸는 종교학자들이 마게도냐 일대와 아가야 지역을 순회 하였다면 그들은 가장 부흥할 수 있는 지역으로 아데네를 선택하였을 것이다. 아데네 사람들이나 그 지역을 드나드는 외국들은 모두 새로운 종교적 이슈에 귀를 기울이며 소일하고 살았기 때문이다(17:21).

 

그러나 바울 일행은 철학과 종교의 도시 아데네에서 더욱 열정적으로 하나님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다. 더욱이 그당시 로마시대를 장악하고 있던 진리의 탐구를 포기하고 육체의 향락을 추구하던 에피쿠로스 철학과 금욕을 주장하며 선을 덕목으로 하던 제논의 후예 스토아 철학과 맞서 우주와 만유의 생명의 주재 하나님을 설파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당시 아데네 사람들과 그 지역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종교성이 많고 새로운 철학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게 된 바울은 작심하고 들어가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다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17:23) 고 외쳤다.

그들의 삶 속에서 아데네 사람들의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특성을 파악한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신 천지의 주재 하나님을 증거하며 특별히 죽은 자의 몸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종교성이 강한 사람들이라면 사후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에 바울의 설교는 그들의 심령을 격동 시킬 수 있었다.

 

7년간 일본에서 살며 뼈저리게 느낀 것은 일본인들의 삶은 우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집이든 회사든 거리든 우상의 전각들이 가득하여 우상은 그들의 신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이며 인생 그 자체였다. 일본인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든지 신에 관한 이슈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또한 일본은 창가학회라는 신흥종교가 정치세력을 이루고 있으며, 별의별 심리학이 만연되어 있어 신흥종교의 본산지가 되었다.

 

또한 근래 우리나라의 사람들의 종교성을 돌아보면 일본보다도 더 심각하다. 오로지 먹고 사는 것에 목숨을 매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이제는 쾌락적 철학과 주체사상들을 찾아 광장으로 모여 들고 있다. 그렇다고 영생의 진리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모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회에서 청년들이 떠나고, 성경공부와 같은 예배가 사라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며 사람의 영혼을 만족할만한 복음을 듣지 못하여 궁핍한 영혼을 채우기 위해 유혹을 따라 방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는 오직 성경을 풀어서 강해로 강론할 때가 되었다. 이것만이 세상 철학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다. (이요나목사)